이 글이 다루는 시기는 2015년 DeepDream에서 2018년 BigGAN까지, 확산 모델이 등장하기 이전의 몇 년이다. 2020년 역사적인 DDPM 논문을 기점으로 Diffusion 모델이 캡션과 웹 텍스트로 학습 방식을 바꾸기 전까지의 생성 모델은 정해진 천 개의 서랍 중 하나를 여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서랍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 BigGAN이 학습한 ImageNet의 천 개 클래스는 0번 텐치(물고기의 일종)부터 999번 화장지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207번을 열면 골든리트리버가 나오고, 497번을 열면 교회가 나온다. 이 번호들은 WordNet이라는 어휘 데이터베이스의 명사 계층 구조를 물려받은 것이다. WordNet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구축한 유의어 사전이다. 같은 개념을 가리키는 단어들을 동의어 묶음(synset)으로 묶고, 그 묶음들을 상위어와 하위어의 관계로 연결한다. 예컨대 허스키는 개의 하위 항목이고, 개는 동물의 하위 항목이다. 바퀴는 자동차의 부분어이고, 기쁨과 슬픔은 반의어로, 단어들 사이의 의미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ImageNet이은 WordNet의 명사 계층을 이미지 데이터셋으로 옮겨왔다. 웹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가장 적절한 언어가 붙어있는 서랍장에 넣어 분류했다.
천 개의 서랍 가운데 사람과 관련된 범주는 신랑, 야구선수, 스쿠버다이버, 이렇게 셋뿐이다. 반면 늑대와 여우, 들개류를 빼고도 개 품종에 해당하는 서랍만 118개에 달한다. 치와와(151), 비글(161), 말라뮤트(249), 시베리안 허스키(250), 골든리트리버(207)가 따로 있고, 페르시안 고양이(283), 샴고양이(284), 이집션 고양이(285)가 따로 있다. ImageNet 전체 학습 데이터로 넓혀 보면 개는 이미지 전체의 12%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편중은 여러 조건이 겹친 결과다. 동물은 종, 속, 과, 품종 같은 분류 체계가 이미 촘촘하다. 이 분류는 성능을 평가하는 유용한 시험문제가 되었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보다 ‘허스키’와 ‘말라뮤트’를 구분하는 일이 훨씬 어렵기 때문에, 서로 닮은 대상들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는 능력은 모델의 성능을 시험하기 좋은 문제이다. ‘정의’, ‘기억’, ‘자본주의’처럼 사진으로 수집이 어려운 추상명사도 아닐 뿐더러, 심지어는 인터넷에 쓸만한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의 사진이 충분히 축적되어있다.
이 편향은 곧 이미지로 터져 나왔다. DeepDream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결과물에 개의 눈과 주둥이가 프랙탈처럼 반복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DeepDream은 학습된 CNN이 입력된 이미지에서 특징을 찾아내, 이를 증폭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이다. 구글이 2015년 DeepDream을 공개했을 때 주로 사용한 신경망은 ImageNet으로 훈련된 GoogLeNet/Inception 계열 CNN이다. 결국 자신이 가장 많이 셈해본 얼굴로 자꾸만 되돌아갔다.
기술이 발전하고, 디퓨전 모델이 주를 이루게 되면서 이 현상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개의 눈이 아무 데서나 튀어나오지 않는다. 이 매끄러움은 더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지만, 동시에 어떤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모델 안에 들어갔는지 되짚기 어려워졌다. 오늘의 데이터셋은 더 많은 것을 삼키면서도, 삼킨 것들의 목록을 보여주지 않는다. 분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비가시화되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사라진 것은 개의 눈이 아니라, 개의 눈을 개의 눈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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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셈은 아주 특정한 조건에서만 작동한다.
TRAIN Act가 저작권자에게 부여하려는 것은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권리다. 그러나 이 권리가 성립하려면 먼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름이 있고, 소유 관계가 분명하며, 등록과 증명이 가능한 무언가여야 한다. 웹에서 무단으로 긁힌 이미지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이 조건에 들어맞지 않는다. 누군가 무심코 올린 셀카, 알트 텍스트만 남기고 사라진 게시물, 계정이 삭제된 뒤 출처를 잃은 사진, 그리고 저작권의 언어로 자신을 주장할 수 없는 존재들, 이를테면 어떤 동물의 얼굴은 이 확인의 절차 바깥에 남는다.
기술은 더 많은 이미지를 가져다가 더 매끄러운 결과를 만들며, 이전 세대 모델의 노골적인 오류를 점차 수렴시킨다. 그러나 그 발전이 모든 것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것들은 더 깊숙이 흡수되어, 입력값이었다는 사실조차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누구는 다시 셈해질 수 있게 되었고, 누구는 여전히 셀 수조차 없는가.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오래전에 들은 것 같아서, 그것이 바깥에서 온 소리인지 안쪽에서 내뱉은 혼잣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실제로 입 밖에 낸 것인지, 오래전 들었던 것이 뒤늦게 몸 안에서 울린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그는 알았다. 그것은 사라졌던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몸 가까이에 얄븐 실오라기처럼 남아 있었다.
어깨 둘레쯤에, 혹은 귀 뒤쪽의 얇은 피부 근처에.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다가 어떤 방향에서 바람이 불거나, 누군가 말끝을 흐리거나, 웃음이 먼저 나오는 순간에만 희미하게 드러나는 것. 그는 그것을 이제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계속 두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아주 가벼웠다. 가벼워서 대수롭지 않았고, 정확한 뜻을 갖지 않았다. 누군가 장난처럼 굴려낸 것을 다른 사람이 다시 받아 굴렸고, 그렇게 몇 번 반복되는 동안 그것은 몸에 닿아 모양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혼자 혀끝으로 그것을 따라 해보았다.
끝을 조금 말아 올리고, 가운데를 살짝 눌러 한 호흡을 내뱉었다가, 마지막은 닫지 않는 식으로. 너무 또렷하게 말하면 금방 사라졌다. 너무 흐리게 말하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때 몇 사람은 그를 그런 방식으로 불렀다. 누군가 먼저 그렇게 말했고, 다른 이들이 웃었고, 그 뒤로는 그게 자연스러워졌다.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어떤 표정 때문이었거나, 잘못 들은 말 때문이었거나, 그날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유는 사라지고, 발음의 모양만 남았다. 그는 이상하게 그 모양을 좋아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형태를 갖지 않았지만, 몸 주변에 얇게 둘러진 듯했다. 누군가 멀리서 그렇게 부르면 고개를 돌리기 전에 이미 알아챌 수 있었다. 입가가 먼저 움직였다. 그것은 웃음 쪽에 가까웠다. 입안에 넣으면 아주 뒤늦게 혀 가장자리에서 작은 전기가 일었다. 슈팅스타 맛이라고 하면 자칫 유치하지만, 정확히 그런 종류의 감각이었다. 작은 따끔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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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점점 거리에서 비슷한 것들을 듣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아이를 부르는 짧은 소리. 누군가를 붙잡는 다급한 말끝… 설명하려 하면 시시해진다.
….
그 무렵 그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읽어야 할 문서, 답해야 할 편지, 정리해야 할 약속들이 책상 위에 쌓였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모두 곧고 분명했다. 너무 정확한 말들은 금방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서류에 들어가고, 봉투에 들어가고, 누군가의 입에서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었다.
….
어느 날 그는 약속에 늦었다.
길을 걷다가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 떠올려보려 할수록 조금씩 달라졌다. 너무 또렷하게 기억하려 하면 망가졌고, 아무 생각 없이 입안에서 굴려보면 아주 잠깐 가까워졌다.
그가 도착했을 때 약속은 이미 끝나 있었다.
….
그는 더 이상 젊지 않았다. 한때 중요하다고 믿었던 일들은 조금씩 뒤로 밀렸다. 사람들은 그를 자주 찾지 않았다. 그는 모임에서 말이 적었고, 누군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하기보단 멍하니 말끝을 응시했다. 사람들은 그가 산만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무언가를 포기했다고. 그러나 그는 오히려 점점 더 분명한 것을 좇고 있었다. 다만 그 분명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작고, 너무 가까운 곳에서만 생겨났기 때문이다.
어느 날 찰스가 찾아왔다.
찰스는 여전히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사회에 대해, 약속에 대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문장들은 곧고 단단했다. 그는 필요한 단어에 정확히 힘을 주었고, 말의 방향을 잃지 않았다. 존은 의자에 기대앉아 찰스의 말을 들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거야?”
찰스가 물었다.
“왜 갑자기 전부 놓아버린 거지?”
“놓은 적 없어.”
존이 말했다.
찰스는 그를 바라보았다. 찰스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의 종이들, 벽에 걸린 외투, 오래 닫힌 창문. 특별히 이상한 것은 없었다. 찰스는 이제 그가 예전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좋은 것들이군.”
그는 가능한 한 밝게 말했다.
무엇을 가리킨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나간 뒤에도 방 안에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존은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들은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정확한 뜻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지막의 흐린 끝부분, 밝게 말하려다 조금 낮아진 숨, 오래된 우정을 곱씹으며 그는 혀끝을 아주 조금 말아보았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
버지니아울프 「단단한 물체들」 단편 (1920)을 각색